유대교인들의 박해의 역사는 히틀러 치하의 나치독일 이전부터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기독교는 예수탄생(나는 무신론자라 절대 믿지 않지만) 후 313년 고대로마제국의 종교로 인정되면서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졌고, 15세기부터 시작된 식민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전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유대교인들을 싫어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그들의 성서에 쓰여있는 것처럼 유다가 예수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배신해 로마의 군대에게 팔아 넘긴 유다. 더구나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롯 유다에게 버림받은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유대교인이란 눈엣가시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인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점차 조직적으로 박해하고 차별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영국에서부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 pogrom 은 유대교인을 향한 박해를 의미하는 러시아어이다.
1900년 전후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관할하던 영국은 이 곳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시오니스트들의 계획에 동의하면서 발포어 선언을 했고 이스라엘 건설에 전폭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시기에 많은 동유럽 국가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을 한다.
1920년대 중반, 폴란드에서는 유대교인을 차별하는 정부정책이 발표되었고 이로 인해 8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건너온다. 1919년에 5만 6천 명 정도였던 팔레스타인 내 유대교인 인구는 1929년에는 15만 6천 명이 되었다. 이어 1933년, 독일 히틀러의 집권은 유대인들의 이민을 엄청나게 증가시킨다. 이 시기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인 인구비율은 전체인구의 3할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1935년 한 해에만 6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이민을 왔으니 그 당시 유대인 유입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알 수 있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자신들의 땅에 유대교인들이 급격히 불어나게 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데없는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저항은 1929년 시오니스트가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 시오니스트 깃발을 꽂은 사건을 발단으로 격화되어 당시 모든 기간산업에 종사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총파업으로 나라가 마비 상태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투쟁이 1939년까지 이어지면서 통치 세력이었던 영국은 이미 대도시 이외 지역에서 컨트롤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Sources
パレスチナ, 広河隆一, 岩波新書, 2002 (일어)
Israel, parlons-en!, Michel Collon, Investig'action-Couleur livres, 2011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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