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iary 끄적임

2024 인도 여행 보고서

Demain les chats 2024. 11. 7. 00:36

 

짜이 마살라 때문이다. 거의 그렇다.

발걸음을 인도로 향하게 한 주된 요인, 그것은 10년 전 지인에게 받은 짜이 마살라 가루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아껴먹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더 이상은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볼리우드 영화, 그 무대가 되는 나라를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여행지로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고를 몇 년. 드디어 간다. 밀린 숙제를 하듯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도 여행 참 피곤하다.

'피곤하고 지친다'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히말라야 지역을 제외하고는 매일이 35도 불볕더위고(더운 거 극혐), 지상 최대 인구 대국 답게 사람에 치여서 지친다.

길거리 좌판에 음식은 넘쳐나지만 풍요 속 빈곤이라 먹을 것이 없다. 지나가며 뭘 봐도 먹고싶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고 커리는 쳐다도 보기 싫다. 굶주리게 된다.

여행하면서 이렇게 절망적으로 한식당 찾아다닌 적은 난생 처음이다.

조드푸르에선 김모한씨가, 바라나시에선 철수 씨가 구세주였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아사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압도적으로 감사해서 팁도 두둑이 챙겨드렸다. 가뭄의 단비 그 자체인 한식당 포에버!!!

 

#1

인도 여행 최대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위생이다. 하도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은 터라 우리도 걱정이 한 트럭이었는데 

다행히도 배앓이 안 하고 물갈이도 안 하고 설사 한두 번 한 거 말고는 무난히 지나갔다. 물은 무조건 사 먹었고 식당에서 나오는 물은 일절 마시지 않았다. 길거리 음식은 딱 한 번 자이푸르에서 먹었는데 한눈에 봐도 회전율이 엄청나고 나름 깔끔해서 도전했다. 맛은 아주 굿~ 

 

음식의 위생도 문제지만 더 문제는 상하수도 시스템의 부재와 시민의식의 후진성이다. 길거리가 그냥 쓰레기통이다. 자기 공간은 깨끗하게 치우면서 모든 오물은 길거리로 내다 버린다. 길가에 좁은 홈이 파여있는데 거기로 주변의 온갖 오수와 쓰레기들이 쌓인다. 창문 열어 쓰레기 휙 버리고 닫는 광경은 매일같이 봤다. 그렇게 너도나도 내다 버리는 오염물에 온갖 동물들의 분뇨 그리고 흙먼지, 사방에서 흘러오는 하수까지 합해져 길거리는 그야말로 토 나올 지경으로 더럽다. 어딜 가든 더럽다. 커리를 먹고 나왔는데 길거리에 떡하니 커리와 똑같은 색의 똥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날도 더워 짜증나는데 내가 먹은 게 커리인지 똥인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커리를 멀리하게 됐다. 

 

 #2

그놈의 툭툭, 그놈의 웨얼알유프롬!!

인도인들 외지인에게 호기심이 많다. 때로는 무례하다 느껴질 정도로 내 호구조사를 한다. 폭력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젠틀하지도 않다. 내 경험상 최악은 모로코인이다. 모로코인들은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혐오스럽다. 모가지 비틀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를 유발하는 놈들이다. 재수 싹바가지 모로코 놈들에 비하면 인도인들은 온순하고 거머리같이 달라붙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구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들이 호기심에 한 마디 건네는 말이 우리에겐 천 마디 만 마디가 된다. "웨얼알유프롬"을 하루에 삼천 번씩 듣다 보니 나중에는 대꾸도 안 하게 된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그냥 무시하고 내 갈 길 가게 되는 매직. 툭툭이나 릭샤도 자동반사로 "노!!"하고 내 길 간다. 안 그럼 하도 치여서 한 발도 나아갈 수가 없다.

 

#3

10월의 라다크.

우리는 10월에 3주 일정으로 여행했다. 첫 행선지는 라다크. 날이 점점 추워지니 첫 타자로 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다. 빙고! 우리가 떠나는 날 레에 첫눈이 내렸다. 

라다크의 10월은 난도가 좀 있다. 저녁이 아주 추워지는데 낮은 또 엄청 뜨겁다. 시즌 끝물이라 여러 여행사들이 문을 닫아서 하마터면 판공초를 못 갈 뻔했다. 동행도 없어서 그 모든 비용을 다 감당했으니 예산이 빠듯한 여행자라면 쉽게 셰어 할 수 있게 사람 많은 여름에 가야 할 것이다. 

LEH의 맛집은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Chef's Kitchen' 여기만 가면 된다. 여기가 제일 맛있고 찾기 쉽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개통한 유심을 인도 전역에서 쓸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아서 철석같이 믿었는데 전혀 아니었고, 라다크를 벗어나자 먹통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에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닌 걸로...

 

#4

망할 놈의 인디고 항공.

틈만 나면 딜레이다 그것도 3시간은 기본으로 딜레이가 된다. 여행 내내 공항에서 허비한 시간만 며칠은 되겠지 싶다. 진짜 지긋지긋한 인디고 망할 놈들.

이스탄불-델리 노선은 7시간이나 되는 장기비행인데 기내 영상물 서비스도 없어서 그냥 흰 화면만 덩그러니 띄워놓고 운행을 한다. 시간 죽이는 데는 영화가 최곤데 그게 없으니 힘들다. 아 진짜 아~~~!!

 

#5

아마추어의 나라. 

나라 자체가 아마추어리즘의 집합체다. 보고 접하는 모든 것이 대충대충. 인도인들 입장에선 최선을 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정말 너무 모든 것이 너무 열악하고 조악하고 조잡스럽다. 예전 캄보디아 여행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었는데 여기도 그렇다. 유일하게 조악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성들의 예복 Saree일 것이다. 예복은 그나마 프로페셔널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다, 디테일을 보지 않았으니 이것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아, 영화산업이 프로다! 나머지는 그냥 보이는 그대로 아마추어 그 자체.

 

#6

그래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몸소 느낀 장점도 여럿 있다. 

인구 절반 이상이 채식을 하고, 식문화 자체가 화려하지 않아 거나하게 먹지도 않으니 그 점은 참 편안하다. 먹방 같은 거, 음식에 목숨 거는 거 굉장히 불쾌하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소박한 이들의 생활이 더 빛나 보인다.

신문지나 바나나 잎을 재활용해 쇼핑백을 만들고 노점의 접시를 만든다. 섬유산업이 발달해서 그 자투리 천을 이용해 포장지로 사용하는 점도 참 근사하다. 그리고 손으로 식사하는 문화다 보니 식당 어딜 가든 세수대가 보이는 곳에 꼭 있어서 화장실을 굳이 찾을 필요 없이 가볍게 손 씻기 아주 좋다. 

 

#7

큰 기대는 금물.

어딜 가든 뭘 하든 우와 소리는 잘 안 나온다. 라다크의 대자연에 들어가도 맘 편히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가 거의 없다. 자연경관 자체는 압도적이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느낌이다. 어느 성을 방문해도 어느 유적지에 가도 "아... 여기는 이렇구나" 느낌 외에는 별 감동도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 인도에서는 뭐 대단한 것을 바라기보다는 워낙 그들의 삶 자체가 이국적이니 그네들 삶의 풍경 그 날것을 즐겨야 한다. 

 

#8

인도는 재미있지만 피곤하고 진 빠지는 나라다.

어디 가볍게 쉬면서 시원한 거 한 잔 하고 싶어도 '카페'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잠깐 쉬어가기도 힘들다. 차가운 음료 찾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그냥 길가에서 쉬어가기는 더더욱 어렵다. 더위와 온갖 장애물에 치여 너무 지쳐서 잠깐 앉아있으려 하면 툭툭 타라고 저 멀리서부터 달려와서 말 거는데 그게 한두 사람이 아니라 오백 명이 연달아 오니까 쉴 수가 없다. 장사꾼들 아니라도 일반인도 방해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외국인이고 특히 한국인이라 하면 너도나도 사진 같이 찍자고 휴대폰 들이대는데 그것도 삼백 명이 연달아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쉴 수가 없다. 

정말 편하게 아무 방해 없이 쉴 수 있는 곳은 호텔방뿐이다. 그러니 인도에서는 돈 아끼지 말고 에어컨 나오는 좋은 방 구하는 게 현명하다. 오롯한 내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막 그렇게 생각했던 만큼 여행이 어렵거나 하지는 않은데 근데 너무 피곤하다. 길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전쟁이고 거기에 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니 진이 빠진다. 원래 여행을 하면 오전에 호텔에서 나가서 저녁 다 먹고 들어올 때까지 밖에서 최대한 볼 거리 할 거리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루틴이고 정상이다. 그런데 인도에선 불가능했다. 오전에 나가서 아침식사 하고 좀 돌아다니면 이미 녹초가 돼서 오후 한두 시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에어컨 풀로 켜놓고 재정비를 해야만 했다. 볼 것도 할 것도 뭐가 별로 없다 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흘러갔다. 바라나시에선 정말 지루해서 혼났다. 할 것이 너무 없다. 

그러나 확실히 재미는 있다. 모든 곳이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인 나라라 세상 정신없지만 언젠가 다시 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짜이 가루가 다 떨어지는 그날이 인도 재방문의 날이 될 것이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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