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th/Palestine-Israel 기사

끝없는 공포의 세상의 왕, 네타냐후

Demain les chats 2015. 6. 10. 06:36

 

작성자: 조나단 쿡

작성일: 2015년 6월 7

사이트: 글로벌 리서치

원문: http://www.globalresearch.ca/netanyahu-is-king-in-a-world-of-perpetual-fear/5453955

번역:

 

네타냐후는 끝없는 공포의 세상의 왕이다

 

지난 주 버락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한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 이스라엘 총리를 온건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안보강박이 그에게 아주 최악의 가능성만을 보게 만든다며 벤야민 네타냐후에게 경고를 날렸다. 오바마는, 네타냐후의 비타협적 태도는 두 개의 국가라는 해결책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뢰를 무너뜨려 버렸으며, 더 이상의 평화회담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 내비쳤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백악관의 고위급 간부들은 네타냐후 정부에게 핍박을 받는 이스라엘 반정부 군인들의 단체인 Breaking the Silence 를 역사상 처음으로 만났다. 이 단체는 지난 여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공격 당시 군인들이 민간인 구분 없이 팔레스타인인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최근 증언했다. 이런 증언들은 후에 국제사법재판소의 전쟁범죄 수사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반정부단체 Breaking the Silence 가 스위스 취리히에서 벌인 증언전시회로 인해 외교적 곤란을 겪었다. 이스라엘은 명예훼손적인 이벤트에 자금을 대었다며 스위스를 힐난했다. 동시에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 세계에 손 꼽히는 민주국가 중 하나라고 변명하기 위해 급하게 기자회견을 가졌고, 정부 관료들이 오바마의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지 않도록 금지시켰다. 이스라엘의 총리는 그 자신이 자국의 정치적 담론을 지배하는 거대한 공포를 쥐락펴락 하는 자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가 선거기간 중 유권자들에게 아랍계 시민들을 내쫓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는 그의 권력기반이기도 하다.

 

지난 주의 초등학생 설문조사는 이러한 광신적 애국주의가 얼마나 깊게 뿌리내려 있는 지 보여준다. 이 조사에 의하면 유대인 청소년들의 오직 4분의 1만 이스라엘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 유대국가가 되는 것보다 중요하다 대답했다. 약간 많은 28%가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인을 향한 정착촌민들의 무작위 폭력을 비난한다고 말했다.

 

한 통계가 이를 설명해 준다. 유대인 청소년 3분의 2의는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 인들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정부는 대대로 민족적 분리정책을 학교에서부터 적용함으로써 이스라엘 시민들이 어떤 위험한 관계형성도 피하게끔 삶의 구조를 아주 공을 들여 만들어놨다.

 

교육현장은 그 거주지만큼이나 거의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들은 나중에 찾아온다. 보통 일 현장에서의 불균형한 역할에서다. 그 때는 이미 아랍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학창시절과 군복무 그리고 광범위한 정치적 분위기로 인해 고착화 되었을 때이다.

 

이중국가 교육을 요구하는 대중은 열 몇의 사립학교 빼고는 없다. 이 중 한 학교는 작년 우익분자에게 화약테러를 당했다. 이스라엘의 가장 진보적인 학부모들마저도 중학교 이후의 유대인-아랍인 혼합교육에는 등을 돌린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아랍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받게 될 정신적 스트레스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 자녀들은 군대에 가 팔레스타인 인들을 인간 이하 취급 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유대인 아이들은 아랍어를 배우지 않고 아랍문화와 접한 경험도 없으며 주로 전쟁이나 폭력을 통한 아랍인들의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 중동에 살면서도 그들은 동쪽보다 서방세계를 더 바라본다.

다수의 유대인 아이들은 성경적 신앙을 중시하고 의도적으로 현대교육을 멀리하는 종교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 최악인 것은 현재 교육부 장관이 정착민의 우두머리인 Naftali Bennett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는 점이다.

 

아랍인의 비인간화는 이스라엘의 군대징집 기간 동안 가속일로를 걷는다. 군인들에게 유대인으로서의 각성을 주입하는 경찰간부나 극우 랍비들의 커지는 영향력만큼이나 계속되는 식민지배의 구조도 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스라엘의 문화영역에서 팔레스타인 인들은 오로지 적으로만 등장한다. 식민지배 하의 그들의 모습을 흔치 않은 시각으로 조명하던 두 개의 프로그램은 이스라엘 정부의 간섭으로 막을 내렸다.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에 대한 한 쪽의 비판은 아랍인 비인간화를 정확하게 객관화한다 왜냐하면 비판 그 자체가 그 대상을 인간화 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장에서 항상 문젯거리는 팔레스타인 인이나 아랍인 혹은 이란 사람이다. Knesset 아랍인 국회의원들은 아무리 중도진영이라 지라도 용인되지 않는다, 지난 이스라엘 국회는 1967 전쟁의 48주년 기념 토론을 거절했다.

 

지역의 정치논쟁은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이 군사적 우위를 점할 있을까에 집중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독자적으로 공격해야 할까 아니면 미국이 대신 하도록 로비를 해야 할까? 어떠한 최선의 방법으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수천 개의 로켓포를 파괴할 있을까? 소수의 좌익을 제외한 모든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구가 현존하는 위험요소라는 데에 동의한다.

 

끝을 없는 공포의 세상에서 아랍인들과 이란인들은 그저 사람이 아니라 거리에 있는 위험한 물질 정도로 여겨진다. 그리고 최악의 가능성의 세상에서 네타냐후는 왕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적은 바뀐다. 언젠가 그들은 아랍국가들과 싸웠고, 현재 그들의 탱크와 헬리콥터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전략적 게릴라 전술로 고역을 치르고 있다.

 

육중한 대포들은 이스라엘의 다음 적을 훨씬 빈약하게 보호해줄 것이다: 민중의 불복종, 反분리정책 투쟁, 국제적 보이콧 그리고 전쟁범죄 수사. 비로소 네타냐후는 진정으로 공포를 느껴야 이유를 가지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