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iary 끄적임

회고하는 은하철도999

Demain les chats 2012. 8. 30. 04:58

 

 

 

얼마 전 뭔가에 필이 꽂혀 유튜브를 통해 은하철도 tv시리즈를 다시 봤다.

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에 큰 임팩트 없이 스쳐 지나갔던 만화영화.

당시엔 다른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그저 티브이에서 시간이 되면 방영해 주는 그런 만화였지만

성인이 되고 난 지금, 난 이 만화를 일본 최고, 아니 지구상 최고의 만화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요는

이 작품은 거대한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굉장히 그림체가 조악하고 현대 만화들과 비교해 이야기 구성도 허술한 면이 없지 않은데

그 모든 단점을 뛰어넘는 작품의 메시지가 보는 내내 고스란히 마음에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경, 불경, 일본신토, 코란 등등 세상에 존재한다는 모든 가르침과 경전의 메시지를 모아 만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가

근래 일본애니 역사에 정점을 찍은 철학의 결정체로 인정받고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은 솔직히 한 번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하기까지 하다.

그에 비해 999시리즈는 단순하지만 명료한, 촌철살인의 정수를 보여준다.

 

 

 

 

                                                                                      Drawing by J

 

 

 

기계인간의 폭력에 부모를 잃은 꼬마 철이가 메텔이라는 여인을 만나, 은하철도 999호를 타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기계인간의 몸을 준다는 안드로메다 별로

떠나는 여정. 그 여정 속에 숱한 죽을 고비와 사건을 만나면서 철이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로 성숙해지고 끝내 결심을 한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기에 더 값지고 고귀한 것이므로 기계인간이 되지 않겠다고.

 

한 회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나래이터의 설명에서는 이 작품이 아이들을 겨냥한 것이 아닌, 어른을 위한 만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자는 새끼를 훈육하기 위해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 오직 인간의 부모만이 자식을 나약하게 키운다"

"자신의 이상만이 우주에서 가장 옳은 것이라 믿는 사람이 많다. 설령 그것으로 인해 가족을 잃는다 해도 독선을 고집하는 자도 있다"

"만약 사람이 착한 마음씨를 가졌더라면 추한 싸움과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 그 부탁을 받아들였을 때는 꼭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리 그 일이 힘들지라도 성공하는 것도 실패도 결국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이러한 어찌 보면 당연한 진리를 설파하는데, 이 말들은 아이들 보다는 세상을 얼마간 살아 본 어른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그리고 각자 남은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마지막 회의 메시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왜 아니겠는가!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다.

별 시덥잖은 만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화의 프레임 너머에 존재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만화가 또 언제 나올까? 한 때 전성기를 맞이했던 일본애니는 지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반복되는 일상, 은하철도가 던지는 교훈을 되새기며 다시 나를 달금질 하는 순간이다.

 

 

 

 

 

 

 

 

 

Belgi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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