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iary 끄적임

모로코 여행, 한 번으로 족하다

Demain les chats 2014. 12. 29. 21:18

 

 

여행이라 함은 보통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혹은 새로운 경험을 위해 어디론가 떠나는 일을 말한다.

후자의 목적이라면 제대로 달성됐다. 그러나 모로코에서의 일주일은 전혀, 결코 편안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지쳐서 돌아왔다.

 

 

1. 관광객을 현금인출기로 아는 모로코인들

어느 나라에나 현지 사정을 모르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나 기만행위는 존재한다.

그러나 모로코는 상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모두 같은 부류다. 어떻게 하면 더 바가지를 씌울까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낼까 궁리만 한다.

 

식당에서 무언가를 주문하면 주문한 음식 외에 여러 사이드 음식을 같이 내오는데 그게 서비스나 공짜가 아니라 사실 돈을 더 뜯어내려고 수를 쓰는 것이다.

주문한 음식만 주면 되지 아무렇지 않게 이것저것 더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나중에 그만큼의 요금을 더 청구한다. 현지인의 테이블은 간단하기 그지 없는데

관광객의 테이블엔 뭐가 많다. 관광객을 현금인출기로 보는지 더러운 수를 쓰며 추가지불을 강요한다. "이것 안 시켰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말해도 못 알아듣는

척 하며 그냥 가버린다. 아니면 지적한 것은 회수하고 다른 것을 가져다 놓는다. 이런 실갱이도 한두번이지 먹을 때마다 이런다고 생각해 보시길. 지옥이다.

 

노점에서 과일을 사려고 해도 가격이 명시되어있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다. 가게에서 물을 살 때도, 과자 한 봉지를 사도 관광객에겐 두세 배로 값을 부른다.

그냥 사면 안 되고 꼭 흥정을 하거나 그냥 돌아서면 된다. 우리는 그래서 필요한 저녁식사 외에 거의 먹지도 소비하지도 않았다. 사람을 돈으로만 보는

장사치들 손에 한 푼도 쥐어주고 싶지 않아서다.

 

 

 

2. 친절한 척 하다 나중에 돈을 요구

모로코의 도시들, 특히나 전통시장인 SOUK이 있는 곳은 길이 미로처럼 복잡해 관광객이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이런 맹점을 이용해 돈들 뜯어내려는 놈들이

부지기수인데 특히 남자들이 나이불문 달려든다. 어딜 가냐, 거긴 길이 없다, 가는 곳을 알려주겠다 다가와서(원하지도 않는데!) 친절한 척 하다가 목적지에

다다르면 얼마를 달라 낯짝 두껍게 요구한다. 이 때 돈을 안 주려 하면 주변에 있는 다른 거지놈들이 들러붙어 돈을 줄 때까지 뭐라뭐라 말을 보탠다.

하아...요구하는 금액을 다 주면 안 되고 그보다 적게 주며 더 이상은 없다고 잡아떼면 된다.

 

산악지대인 베르베르족이 사는 한 마을을 지날 때 어느 여자아이가 말을 걸길래 대답해주고 몇 마디 주고 받았는데 가려고 하니 돈 제스쳐를 취하며 손을

내민다. 산책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어떤 늙은이가 '여기가 내려가는 길'이라며 따라오란다. 난 분명 내려가는 길을 알고 있고, 그 노인네를 따라갈 이유가

전혀 없는데 우리가 자기를 따라올 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다. 할 수 없이 따라갔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가 계속 따라오는 지 확인하며 내려간다. 택시가

서 있는 곳에 다다르니 우리가 돈을 줄 때 까지 기다리고 서 있다가 돈을 받고나니 그 때서야 자리를 뜬다.

 

이런 식이다. 어딜 가나 이런 식이다. 애고 늙은이고 외지인에겐 무조건 돈을 구걸한다.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고 만다. 그래서 진짜 친절을 베풀려는

사람들에게까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고 결국 모로코인들 전체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이 되어버린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불찰이다.

 

 

 

3. 끊이지 않는 훼방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정말 귀찮음의 연속이다. 특히 젊은 남자들이 그러는데 우리가 지나가면 대뜸 "웨얼 아 유 프럼?" "재패니스?" "곤니치와"

"디스 웨이(여기로 가라-길을 안내해 주겠다, 말인 즉슨 안내하는 척 하며 돈을 뜯어내려는 것)" "이것 좀 사라" "우리 가게를 구경해라" 등등 온갖 말을 다

하며 관광객을 귀찮게 한다. 길에서 한가하게 서 있는 젊은 애들은 말을 걸고 반응이 안 보이면 몇 십 미터를 쫓아 오기도 한다.

식당이건 잡화가게건 호객행위하는 직원들이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달라붙어 여기서 먹어라, 여기서 사라, 여긴 뭐가 있다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여러 번 대놓고 "귀찮게 굴지 마라" 고 큰소리 쳤다. 동양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게다가 불어로 말하니 초파리같이 지독한 놈들도 벙~찌더라.

여튼 이 모든 것이 다 '현금인출기'인 관광객을 상대로 재미보려는 속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4. 어이없는 팁 강요

고속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버스에 짐을 싣는 건 당연. 표를 샀고 냈고 짐을 실으려 하는데 2유로를 요구한다. 짐 싣는 비용이란다. 참 나...

포장마차에서 밥을 먹고 일어나려는데 우리한테 서빙한 놈도 아닌 게 와서 대뜸 팁을 내놓으라고 한다. 팁! 팁! 거리며 소리를 친다. 안 주면 못 나가게 할

태세다. 맛있게 먹고 기분 잡치고 나오는 순간이다. 진짜 대단하다 모로코 사람들.

 

 

 

우리는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나름 분석이란 걸 해봤다.

 

아프리카 대륙의 구석에 위치한 모로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하면 천국이지만 높은 실업률과 낮은 교육수준 그리고 가난한 생활에 찌들어 있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절대적으로?) 부유한 유럽 대륙에서 온 관광객. 잘 살고 여가를 즐기러 비행기까지 타고 오는 외지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느낄 박탈감

나는 잘 안다. 본인들은 휴가는 커녕 제대로 먹고 살 돈도 없으니 돈 많은 외국인들이 한 편으론 부럽고 또 한 편으론 적대감이 들 것이다.

그래서 그 외국인들을 어떻게든 해서 돈을 최대한 뜯어내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고 또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들이 무슬림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터키인들은 같은 무슬림이지만 정반대의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친절을 베풀고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 가난 때문일까? 아니다. 더 가난한 캄보디아, 필리핀의 빈민촌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오히려 더 친화적이고 절대 돈 따위 요구하지 않았다.

 

서양선진국들의 몇 세기 동안의 착취로 고통을 받는 대륙은 비단 아프리카만이 아니다. 아시아도 남미도 미국 이전의 북미도 고통으로 신음했고 신음한다.

모로코인들의 진절머리 나는 태도는 내가 그들의 입장에 서 있지 않아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대충 짐작은 이 정도다. 적의와 절망.

 

 

 

아프리카 여행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짜릿하고 또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신선하다. 그러나 이 모든 불편과 짜증과 간섭과 불합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절대로 도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는 만약 다시 아프리카를 여행한다면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해 현지인들과 같이 일하고 생활하는 경로를 택할 것이다.

관광객은 아프리카에서 현금자동인출기(호갱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는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2014 세상 어느 구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