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iary 끄적임

호기심 가득 러시아 여행, 그 후기 및 여행정보 몇 가지

Demain les chats 2015. 3. 2. 06:49

 

 

거의 한 달을 있었다. 2월 한 겨울의 러시아.

러시아를 제대로 느끼려면 그 추위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며 꼭 겨울에 가야한다던 S, 그래서 살을 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다녀왔다.

 

러시아는 한 나라라기 보다는 광활한 대륙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 그 위용답게 모든 것이 우리가 상상 가능한 스케일을 뛰어 넘는다.

그 곳에 있다가 좁아터진 벨기에로 돌아오자 느껴지는 답답함!

자연환경도 문화도 사람들도 모두 좋았던 여행. 벨기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울먹일 만큼 러시아는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 러시아 여행, 정보가 없다?

 

많은 한국인들이 러시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정보를 찾기 어려워 애를 먹는다 한다. 뭐 한국어로 된 정보가 없다면 이해하지만 영어나 불어로는 얼마든지 검색

가능하기에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정보부족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S는 러시아어 번역 전공. 호텔에 직접 컨택을 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등

그가 모든 여정을 짜고 예약을 도맡아 했으니 나는 그저 따라가 즐기는 것 밖에 한 일이 없다. 요는 다양한 경로로 많은 정보획득이 가능하다는 것.

 

 

# 여권만큼 중요한 출입국 신고서 Immigration card 

 

공항에서 어떻게 나가서 어떻게 버스를 타고 어떻게 호텔에 도착하고 그런 것은 부딪히며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지만 이보다 백만 배 더 중요한 여행팁이 있다.

바로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주는 출입국신고서다. 이 여권 크기만한 종이에는 본인의 신상정보와 입국날짜 등 주요 정보가 적혀 있는데, 정보의 절반은 본인에게,

나머지 절반은 심사대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다. 만약 이것을 잃어버리면 귀국하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여권에 넣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이 신고서는 러시아 국내 비행기편이나 기차편을 이용할 때도 여권과 함께 제시해야 하므로 항상 주의 깊게 다루고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도록 한다.

 

 

# 사방에 깔린 감시카메라와 경찰병력

 

혹자는 공산주의 국가였던 구소련의 이미지 때문에 러시아가 무서울(?)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감을 갖고 있는데 실제 한 달 그 곳에서 여행을 다니는 동안 전혀

어떠한 불안감이나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었다. 오히려 사방에 깔린 경찰과 감시카메라 덕에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너무 자유로워 무정부적인 서유럽에 있다가 통제와 감시가 일상인 러시아에 오면 자유에 제약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게

러시아 사회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임승차가 불가능하고 하나하나 행동거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사회. 자유가 넘치다 못해 무책임함이

일상인 벨기에보다 나에게 더 맞는 나라인 것 같다.

 

 

# 영어가 안 통한다

 

다른 나라처럼 러시아도 수도인 모스크바에선 영어 하는 사람 만나는 게 어렵지는 않다. 적어도 호텔이나 대형상점 등에선 말이다. 그러나 수도를 조금만 벗어나도

러시아어를 못 하면 적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모든것이 실릭으로만 적혀있고 모든 이가 러시아어만 한다. 뭐 당연하다 자기 나라에서 자기 말 쓰는데 문제

될 게 뭐 있는가? 여행자 입장에선 고통이지만 현지인들에겐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나는 겨우 실릭 읽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러시아어에 능한 S 덕에 정말

편하게 여행을 다녔다. 한국인들도 한국어 잘 하는 이방인에 특별히 호의적이듯 러시아인들도 자기네 말 잘 하는 이방인인 S 를 좋게 봤음은 두말 할 나위 없었다.

결론은 기초단어 정도는,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실릭을 읽을 줄은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여행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것이다.

 

 

# 서비스는 아시아 마인드

 

유럽에 살면서 불친절함과 無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러시아에서의 서비스공세는 나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간단히 말해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같은 아시아 마인드의 서비스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친절하고 정돈되어 있다.

과장 조금 해서 숨쉬는 것에까지 돈을 물리는 유럽식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 다이어트는 불가능

 

러시아는 먹을 게 많은 나라다. 미식여행같은 것엔 관심도 없는 우리지만 지난번 모로코 여행 때는 정말 먹을만 한 게 너무 없어서 고생을 했었기에 이번 러시아

에서는 그런 걱정 없이 잘 먹고다녀서 만족감이 컸다. 여러 음식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버섯을 넣은 크로켓같은 빵인데 그게 너무 맛나서 여러 번

사 먹었다. 채식은 쉽지 않았지만 머리를 잘 쓰면 얼마든지 할 방법은 있다.

단, 음식들이 대체로 기름지고 마요네즈 범벅인 경우가 많아서 매운맛 감칠맛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에는 안 맞다. 메뉴를 잘 고르는 것이 중요하고 뷔페식

식당에 가는 것을 권한다. 최소한 내 눈으로 무슨 음식인지 확인하고 먹을 수 있으니까.

 

 

# 40도의 온도차

 

러시아의 겨울은 혹독하다. 모스크바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편에 속할 정도로 다른 지역은 더 춥다. 특히나 북극권에 위치한 무르만스크나 바이칼 호수에 있을

때는 정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추위를 견뎌야 했다.

그러나!! 밖은 그리 추울 지언정 실내는 옷을 다 벗어야 할 정도로 덥다. 수퍼마켓이든 은행이든 호텔이든 고속버스든 기차든 실내에만 들어가면 땀이 금방 찬다.

실내외 온도차가 40도라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지긋지긋한 추위를 이기고자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놓는 게 아닌가 싶다. 한여름 복장으로 지내야 하는 실내와

몇 겹을 껴입어도 냉기가 느껴지는 실외. 러시아의 겨울나기는 실내외 온도차 만큼이나 다이나믹하다.

 

 

# 러시아에 왔으면 발레 정도는 봐줘야!

 

볼쇼이 말고도 얼마든지 많다. 우리는 크레믈린 궁 안의 대형 극장에서 열린 지젤공연을 봤는데 관람료가 우리 돈으로 만원 정도였다. 이런 퀄리티의 공연을

벨기에나 한국에서 보려면 몇 십만원은 그냥 날아갈텐데 러시아에서는 발레가 대중문화의 일부분이라 저렴하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것. 이왕 러시아까지

왔으면 발레 정도는 놓치지 않고 봐 주는 것이 센스가 아닐까 한다.

 

 

# 클라스가 다르다

 

워낙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다 보니 모든 것이 우리가 아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도로는 어지간하면 8차선 이상, 16차선인지 20차선인지 되는 곳도 부지기수.

차도는 비행기 활주로 마냥 광활하고 인도는 축구를 할 수 있을 만큼 넓다. 건물 하나가 한 블럭을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고, 공원이라 부르는 곳은 숲인지

헷갈릴 정도로 엄청나다. 러시아 최북단 대도시인 무르만스크에 갈 때는 기차를 이용했는데 무려 35시간을 달려 도달했다. 바이칼 호수에 갈 때는 6시간을 날아

도착했다. 중요한 건 그렇게 6시간을 날아가도 여전히 러시아 한복판이라는 것!!

정말 입이 쩌억 벌어지는, '클라스'가 다른 나라 러시아. 그 곳에 있다가 벨기에에 오니 좁아터진 도로에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한 사람 지나기도 벅찬 인도,

게다가 사방팔방 들쑤셔 놓은 공사중, 개똥들까지... 숨막혀 죽을 것 같다.

 

 

# 인상적인 러시아 남자들

 

여친 가방 들어주는 것은 기본이요, 옷까지 입혀주고 머플러도 감아주더라. 여자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다 받고 있다. 키스는 길거리고 식당이고 아무데서나 기분

내키는대로 하고 데이트비용도 다 계산하더라. 물론 내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남자들 이같은 예를 들어가며 한국여자를 욕하는데 내가

본 저 러시아 남자들은 한국남자 논리로 보면 호구 중에 개호구요, 당연하듯 받는 러시아 여자들은 무개념 보드카녀가 되겠군.

 

 

# 레이어드만이 살 길

 

살점을 파고드는 추위 속에 핫팩따위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한겨울 러시아를 지내려면 핫팩보다는 여러 겹 레이어드를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바지도, 상의도,

장갑도 두세네다섯 겹을 껴입어야 추위를 견딜 수 있다. 모자와 얼굴보호대(?)-뺨따구과 코가 얼어붙는 걸 방지하기 위해 가려줘야 함-는 필수다.

 

 

 

가이드북으로 론리플래닛을 이용했는데 이건 순전히 미국인의 시각에서 쓴 책이라 정치적 앙숙관계인 러시아에 대해 안 좋은 평이 많이 들어가 있다.

경찰들을 조심하라는 둥, 치안이 안 좋다는 둥...겁을 잔뜩 준다. 아마 이것이 목적? 그래서 가기 전에 우려를 좀 했는데 치안은 전혀 문제 없었고 경찰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제지받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리는 어떤 수상한 짓도 하지 않았으므로 제지당하는 일도 없었다.

 

한겨울 동화속 눈의 나라를 다녀온 듯, 남긴 사진들을 보니 하나같이 새하얗고 춥다. 다음에 또 가고 싶냐 물어보면 주저 않고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러시아는

광활하고 볼 것도 갈 곳도 많다. 생각보다 수월했던 나의 첫 러시아 여행, 이 곳을 여행하려 검색을 통해 찾아 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2015 세상 어느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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