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iary 끄적임

좋은 배경의 중요성

Demain les chats 2015. 8. 11. 21:27

 

 

 

 

 

우리 테라스에는 조그마한 텃밭이 있다. 손바닥 만한 땅만 있어도 뭘 갖다 심는다는(?) 한국인이라서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나는 미니 농사를 짓는다.

깻잎을 유난히 좋아하는 S의 입김 탓에 올해도 어김없이 깨를 심었는데, 두 달의 터울을 두고 두 번을 심었다. 왜냐하면 첫 번째 화분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밀식재배 된 애들이 실패한 애들이고, 왼쪽의 큼지막한 아이들이 새로 심은 것들이다.

 

실패의 원인은 밀식재배 탓이 아니라 흙의 재활용이었다. 작년에 사용한 흙을 버리지 않고 뒤집은 후에 새 흙을 조금 부어서 씨를 뿌렸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

이었는데 결과는 안 좋았다. 잎의 색들이 이상하게 연했고, 결정적인 것은 작년에 있었던 '잎마름병'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사진에서 애들의 상태는 좋아보이지만

사실 이 애들은 아프다. 잎의 끝부터 검게 말라가는 잎마름병은 여름 고온과 함께 가속화하므로 여린 잎들에겐 치명적이다.

 

이 사진은 찍은 지 좀 된 것인데, 현재 상태는 왼쪽의 새 아이들이 오른쪽의 아픈 아이들의 키를 추월하고 잎도 엄청나게 무성한 상태다. 영양상태가 좋아 벌레가

갉아 먹어 구멍이 여기저기 있지만 그것마저 아주 귀엽다.

 

그렇다.

배경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동물이고 식물이고 사람이고 고양이고 감자고 선인장이고 뭐가 됐건 간에 좋은 배경을 만나는 건 이래서 중요하다.

똑같은 씨앗을 뿌려놔도 어떤 배경을 토대로 자라느냐에 따라 결과는 병에 걸릴 수도, 엄청난 속도로 번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이라도 어떤 집에 입양 들어가는가가 그들의 일생을 좌우한다. 거지 발싸개같은 집에서 제대로 못 먹고 학대 당하면 죽음행이고,

좋은 집사 밑에서 여유롭게 자라면 팔자가 늘어지게 되는 것.

 

늘 그렇다.

부유한 집,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성공의 계단을 어떠한 방해도 없이 걸어서 올라간다. 아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상승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성공은 커녕 자기 앞가림조차 못 하는 병신으로 살게 된다.

 

나는 병든 토양에서 태어나 자라 여기저기 성한 데 없는 존재. 신체적으로 치명적인 병은 없어도 잔병치레를 많이 하고...심리적으로는 아직도 많이 아프다.

 

겨우 들깨 조금 재배하면서 별 생각을 다 하게 되는 요즘이다. 좋은 배경의 중요성. 너무나 잘 알지만 다시금 내 가슴을 휘젓고 간다.

 

 

 

적당히 더운 세상 어느 구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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