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iary 끄적임

가치의 충돌 外

Demain les chats 2018. 4. 18. 20:03


# 진부함


흔히들 '봄'이란 계절을 두고 '만물이 소생하는'이라든지 '생명력이 움트는' 따위의 표현을 쓴다.

전에는 이런 표현들이 진부함을 넘어 썩은 물을 재탕하는 것 같아서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무겁고 추운 겨을 끝에 불어오는 살랑살랑 따스한 바람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이런 표현들도 다시 보게 되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하루하루 초록초록 해지는 나무들과 알록달록한 길가의 꽃들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그 움트는 에너지는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이 되고, 짧은 봄이지만 그 기간을 지나면서 남은 한 해를 활기차게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표현이 진부하다는 건 그만큼 지겹게 쓰인다는 뜻이고 그에는 다 그만 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 가치의 충돌


채식주의라는 철학을 가지고 식습관을 고쳐온 지 어언 10년. 비건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굉장히 까다로운 식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가치관은 지금도

충분히 유효하다. 채식만큼 내가 신경 쓰는 생활습관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쓰레기 배출 안 하기'다. 이는 물, 전기, 가스 같은 자원 아껴쓰기를 포함, 그 연장선으로

재활용품 구매, 헌 옷으로 에코백 만들기 등등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진 습관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나는 장을 볼 때 마감임박 물품 위주로 구매를 하는 편인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여기에서 가치의 충돌이 발생한다. 마감품목엔 굉장히 자주 '육류'가 포함되기 때문.

전세계적으로 한 해 생산되는 식품의 3분의 1 정도는 팔리지 않은 채 폐기된다. 정성들여 키우고 가공하여 세상에 나온 수 많은 동식물들이 의미 없이 다 버려지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이 치가 떨리게 증오스럽고 무섭다. 식물도 식물이지만 특히나 동물에 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태어나서 제대로 사랑받지도 못 하고 죽었는데

죽어서 된 식품마저도 소비되지 못 하고 버려진다는 건 너무 잔인하고 그 죽음의 의미도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머리 아플 타이밍이다. 식품 폐기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동참하는 의미에서 마감세일하는 육류를 구입할 것이냐, 아니면 끝까지 채식을 고집할 것이냐. 답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 가치의 충돌 2


운전면허 연습용으로 구입한 작은 차가 있다. 면허 딴 지도 꽤 되었고 이사도 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자가용이 필요없게 되었으니 되팔려고 했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내 차는 1년을 더 나와 함께할 운명이 됐다. 그래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있는 동안 즐기자는 차원에서 나는 수시로 차를 몰고 다닌다.


그런데 매번 죄책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환경운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면서 자가용이라니 스스로도 모순이라 느끼기 때문. 그러나 어차피 가지고 있는 차인데 놀게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이상하다. 자동차 유지비는 유지비대로 들어가고 버스비까지 들어가니까.

답은... 안 나왔다.



B 2018